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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내러티브의 동행

예술가 주체가 자신의 서사를 구현하기 위해서 매체를 끌어들인다는 일반적인 도식의 이면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이재훈의 작업은 미디어가 내러티브를 견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미디어를 내러티브의 종속변수로 볼 수도 있지만 예술가의 몸에 가장 잘 맞는 매체가 서사를 견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우리는 이재훈의 경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재훈은 프레스코 기법을 사각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벽그림의 방식을 액자그림으로 전환한 ‘비기념비(UNMONUMENT)’ 연작들이다. 그의 회화는 건축물의 일부분으로서의 벽그림이 아니라 독자적인 발언을 위해서 존재하는 액자 속의 벽화 스타일 그림이다. 이재훈의 벽화 스타일 그림은 자신의 내러티브를 최적화하기 위해서 빛바랜 물질의 기억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비기념비 연작으로 진화했다.

그는 오랜 벽화실험을 통해서 매우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자신의 전형을 창출했다. 프레스코 벽화에 관한 연구와 실험은 그의 스타일을 세우는 데 근간이 되었다. 그는 석회와 먹을 써서 빛바랜 흑백사진과도 같이 낡은 이념의 틀을 표상하는 비기념비의 물질성을 창출한다. 배체를 통해 밀어올린 먹 색깔들은 우연의 효과로 증폭하면서 회화의 맛을 배가한다. 깔끔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그림이 아니라 구석구석 군더더기가 묻어있는 표면을 통해서 낡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현실을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잘 살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재훈이 회화의 물성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회화 자체를 소비하면서 물질에 탐닉하는 데 따르는 부담감을 최소화 하면서도 최대한 회화 자체의 매력을 발산하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서사의 강박을 적절히 충족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최대한 자유롭게 회화라는 물질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무덤의 기념비 양식을 회화적으로 차용하는 이재훈은 인간의 형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하고 변형한다. 그 인간은 일러스트 풍의 캐릭터들이다. 몸통에 비해 커다란 인간의 머리는 이재훈 그림을 친숙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이다. 때로는 손과 발처럼 인간 신체의 부분만 등장시켜 과장과 왜곡의 방식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그것은 시니컬한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처리할 줄 아는 예술가의 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이재훈의 주요 관심사인 인정 시스템의 상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옛것과 새것이 혼재해있으며 한국과 이국,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섞여있다. 또한 시니컬한 감성과 유머러스한 감각이 함께 들어있다. 그의 발언이 깊고 넓은 파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상호 이질적인 요소들을 뒤섞은 역설과 은유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익명의 개인들에게 묻는다. ‘정말 참 잘 했는지, 여전히 잘 하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고 그러고들 있는지’를 묻는다. 그의 질문은 부정을 내포하고 있다. 참 잘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정 시스템을 뒤집는 이재훈의 발언은 따라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부정하는 역설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기념비 스타일을 끌어들인 비기념비라는 설정에다가 또 하나의 역설적인 개념을 보탰다. 근작의 주제어인 ‘노블 세비지(NOBLE SAVAGE)’는 야만적인 귀족, 즉 고결한 야인(野人)을 말한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야만의 상황을 집약한 개념이다. 그는 상을 받거나 기도하는 개인, 책을 들고 칼을 빼드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권력과 욕망의 덫에 걸린 개인과 사회의 면면을 담아낸다.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의 담지자로서의 인간 개인과 그 집단인 사회의 폐부를 드러내곤 한다. 특히 그가 지식권력에 관한 비판이다. 책과 칼은 온전히 권력을 상징한다. ‘불건전한 관계’는 넘버원에서 넘버파이브에 이르는 다섯이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다섯명의 상호관계는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일반원칙 같은 걸 보여준다.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라는 제하의 연작 몇 점은 여성의 미끈한 하체를 아름다움(美)과 연관시키고, 넥타이 맨 남성의 상의로 힘(力)을 표상하는가 하면, 쫙 편 손바닥에 참 잘 했어요 도장을 새기거나 불끈 쥔 주먹 앞에서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인정 시스템 속에 갇혀있는 인간들의 권력관계를 압축한 그림들이다. 5미터가 넘는 기념비적인 대작 는 지식과 권력, 전체주의와 국가주의, 맹적적인 권위와 위선, 지배와 복종, 집단주의의 권력과 개인의 유약함, 경쟁과 투쟁의 사회, 우상화한 지배 이데올로기와 나약한 개인의 식민적 상황 등을 담고 있다. 경쟁이 일상화하고 영웅의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의 준엄한 약속을 한 화면 안에 집약한 거대한 군상이다. 그것은 꿈틀거리는 인간사회를 거대한 덩어리로 시각화한 신학철의 콜라주와 같이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게 해준다.

스타일의 독창성이 곧 예술적 창의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예술 장의 기본 논리이다. 따라서 예술가 주체의 성립은 곧 매체를 다루는 기술의 독자성 여하에 달려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예술에 있어서도 미디어는 내러티브를 견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매체가 서사를 견인하는 것이 결과론적으로 가능하다고는 보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관계로 흐르면 다소간 위험할 수 있다. 이재훈의 경우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재훈의 회화에서도 미디어의 선행 현상이 완곡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가지고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구조로부터 개인으로, 익명으로부터 실명으로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미디어와 메시지는 서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재훈의 스타일이 그의 발언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개인, 그리고 집단과 집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은 현실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재훈은 사회적 소통의 구조를 통해서 현실세계를 들여다보는 예술가이다. 그가 다루는 것은 개인과 사회 사이의 무수히 많은 소통 체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현실을 자신의 회화적 발언의 장으로 끌어들여 그 안팎을 헤아리는 비판정신이 이재훈 회화의 근간이다. 그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관점에서 사회와 개인의 소통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이전 작품들이 익명의 인간들을 통해서 사회구조를 드러내는 식이었다면, 근작에 들어서는 그것이 비록 익명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실체들, 그러니까 개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곧 실명의 개인과 실제의 사건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대입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이 곧 이재훈에게 내제한 미디어와 내러티브의 변증법이 아니겠는가.

김준기 / 미술평론가





Noble Savage
고귀한 미개인
Unmonument-since 2009
LEE JAE HOON(이 재 훈)

사회라는 커다란 숲은 소통이라는 인간의 교류-새로운 지식, 정보, 감정의 습득-를 통해서 자라왔고, 바꿔 말하면 이 집합체는 삶이라는 인간의 영역으로부터 소통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성장해 왔으며 나 외의 것과의 사이를 조화롭게 만들어주며 더욱 더 발전 되어왔고 발전되어 가고 있다.
사회에서 소통은 이러한 발전과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인간을 혹은 그 행동들을 판단하는 사회적 기준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기준점들을 바로 사회를 통해 배우거나 습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기준이 되는 사회적 관념들이 인간을 규정짓는데 올바른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수 있는가.

UNMONUMENT-(비기념비)

소통의 벽에 대한 큰 틀은 UN-MONUMENT(비 기념비)에 있다.
사회 안에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일정한 관념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착하게 살자 , 하면 된다 , 혹은 참 잘 했어요,..등"그리고 사회가 주는 인간이라는 본질적인 이름 이외의 타이틀"선생님, 학생, 어머니, 아들, 딸, ..등"
사회는 우리에게 이러한 관념들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행동적인 행위까지 부여한다. 이는 사회적 통념이라는 의식의 선이 우리의 행동들을 올바른 것과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구분짓게 만든다. 사회적 통념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양식을 규정지어 버린다.바로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회적 통념들이 우리의 의식속에 보이지 않는 기념비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형적 기념비들은 사회를 조직하는 특정한 제도적 규범 내에서 집단의 사회적 역할을 이상화 한 것으로 공공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종종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측면 보다는 집단적인 이상을 반영하는 언어적 기능, 일종의 정치언어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에는 인간의 감정, 정신성, 개인의 개성이 개입되기 어려운 사회제도로서의 영역만이 존재하게 된다.

본인은 이러한 기념비의 가치들이 안고 있는 피상적 특성과 표면적 기호로서 존재하는 기능을 활용하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소통의 벽에 대한 상징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념비의 형태표현은 사회적 관념들에 대한 지시와 표식 그 자체의 기능만을 가질 뿐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한 기념비의 역설적 의미를 지적하는 것이다. 즉, 이상향화 되어있는 현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기념비가 아닌 기념비인 것이다. 그것은 물론 기념비 자체가 아니라, 기념비화된 우리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인이 제시하고 있는 Un-monument(非기념비)라는 신조어는 이렇게 고정되고 이상화 된 사회적 관념을 기념비적인 형식을 통해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하나의 사회적 타이틀로, 일정 집단의 상징물로 대치되어 버린 세계,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허식의 세계, 내면적 진실과 외형적 형식의 괴리감에서 오는 허망함 앞에 묻고 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것이 현실입니까?’


Chapter 1 - NOBLE SAVAGE(고귀한 미개인)

UNMONUMENT는 전체작업의 큰 맥락이다. 그 안에는 각각에 소통의 단절을 만드는 원인들이 하나씩의 chapter 로 구성되어 있다. UNMONUMENT展은 작품의 큰 아우트라인을 보여주고자 했고, NOBLE SAVAGE는 그 첫 번째 chapter 이다.

본인이 사용하는 고귀한 미개인의 개념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회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표피적 개념을 역설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현실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선택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소통의 한계성과 인간 관계의 불건전한 진화에 대한 문제성을 들어내고자한 개념이다.

물질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그 풍요와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어찌 보면 우아하며 고귀한 인간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려 진다. 그리고 그 풍요의 장막은 편리라는 사회적 시스템 속에 우리를 젖어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 풍요라는 장막의 안은 그만큼에 새로운 더 많은 사회적 행동의 제약과 관념들이 생겨나 있다.
우리는 그 이분법적인 장막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그것이 사회의 첫 모습인 것처럼 당연한 가치인양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맹목적 믿음은 소통을 통한 관계의 가치판단 기준이 되어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나누어버린다.
이러한 기준이 현실에서도 같은 기준이 되어 판단되어지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인간의 맹목적 믿음은 이상적인 사회의 기준점으로, 현실의 관계성은 비정상적인 진화로 판이하게 다른 모습들을 띤다. 즉, 현실과 이상의 서로 다른 기준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교육에서 배우는 사회와 현실의 사회는 엄현히 다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히게 된다. 이처럼 이상적인 사회적 소통의 기준과 현실적인 사회적 소통의 기준에서 오는 괴리감 속에서 적응하는 자와 적응하지 못하는 자로 나뉘게 된다.
이렇게 양립된 사회적 통념들은 우리 의식 속에서 관계성에 의심을 갖게 되고 더불어 불건전한 모습들로 진화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들 옳지 못한 일이라고 판단되어지는 것들이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게 되는 경우를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혼란과 갈등이 계속 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지나 그 통증을 당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 양립된 사회적 통념들은 우리의 의식 속에 뒤엉켜 현실사회의 또 다른 적응력으로 길러진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념들은 인간관계, 집단의 관계들에 있어서 불건전한 진화를 하게 된다.
겉모습은 이상적인 사회의 고귀한 인간의 이상적인 행동들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념, 그리고 그 관념과 양립된 현실의 가치판단 기준......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지 않고 그것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사회인으로써의 미개인. 바로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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